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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31, 2013

형아

형호야 사진찍어줘.
아 뭐야~ ㅎㅎ 지금 이 상황에.
설암으로 인한 절제수술을 2011년 1월에 마치고 본가에서 요양하던 동생이 각종 검진 및 촬영결과 이상이 없다해서 5월경 집으로 돌아갔다. 좀더 본가에 있으라 했지만 집을 너무 오래비웠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두달후. 한달전 검진결과가 나왔다. 폐암. 5cm. 의사들도 흔적없던 암세포가 한달만에 이렇게 갑작스레 커지는 경우는 처음봤다며 놀란다. (서울 아파트 환경은 정말 쾌적하게 유지 하지 않으면 암환자에게 맞지 않다.) 수술이 잘 마쳤다는 결과에 안도하며 소홀했던 내모습이 미안했고 동생이 보는 내모습은 어떨까 싶었다. 그 모습을 새겨놓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노력하는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의 형이 되고 싶었다. 병에 대한 치료방향을 정하기 위해 온 가족이 동생집에서 모인날, 집에서 동생에게 찍어달라 요청했고 이 사진은 내 대표사진이 되었다.
2011. 7. 31

2년동안 항암치료,방사선치료 및 자연치료등 여러 치료를 병행했고, 크기가 작아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괜찮은 것 같다가도 큰 계단 내려가듯 건강이 안좋아지는 단계가 거듭되었다. 매순간의 선택이 생과 사에 대한 선택이었고, 또다른 항암치료를 위해 7월에 입원을 했다. 하지만 결국 의사에게 들은 이야기는 우리가 가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 이야기를 들어도 환자가 받아들이기 전에는 들은것이 아니였다. 그 후에도 칼날위를 걷는 듯한 선택의 연속이었고, 어느날 갑자기 전화가 왔다. "형 빨리 와줘" 숨이 넘어갈것 같던 어느날 동생은 더이상 힘들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진작 이랬어야 하는데. 형. 항상 나는 이렇게 늦네."

그날 같이 밤을 지새며 간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저녁. 갑자기 계획이 바뀌어 있었다. "앞으로 이런 이런식으로 치료할거야" 정리를 하고싶어하던 마음에서 암을 치료하는 원마음으로 바뀌었나? 그제 그렇게 후회했으면서? 나는 얼마 없는 시간을 그렇게 동생이 보내게 하면 안될것 같았다. 치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써야한다 생각하고 '나쁜 형'이 되더라도 이야기해야겠다 생각했다. "형호야 받아들여라. 너 죽는다.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어." 냉정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동생의 부은 다리는 주무르며 시작한 이야기는 눈물을 터트리게 했다. 이야기를 듣던 동생도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했다.
"형 고마워. 그렇게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다른 사람들이 나때문에 고생하는데, 희망을 걸고 있는데. 내가 그렇게 이야기할수가 없었어. 나도 정말 정리하며 편하게 있고 싶었어.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형밖에 없어. 내가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마. 잊지마. 잊지마."
나쁜 형이 될까 걱정했지만 작심하고 한 말인데 내 일생에 가장 잘한 선택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많은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이야기했다. (폐암은 언제나 평상시처럼 이야기할수 있는것이 아니다. 운이 좋아야, 기력이 모여있는 상태가 되어야 이야기가 가능하다.) 그러던 어느날 이야기 하던중 동생이 내 사진을 찍어서 계속 보고 싶다 했다. "형 나 형사진 찍어서 가지고 있고 싶어. 가만히 있어봐".  평생에 처음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는 그 떨리는 팔로 핸드폰을 짚어서 직접 사진을 찍었다.  우연히도 13.7.31. 정확히 2년이 흘렀구나.
2013. 7. 31 내 동생이 나를 보는 모습. 이 사진 얼마나 봤을까.
나를 괴롭히는 것. 그 실체를 깨달은 적이 있었다. 동생이 잊지말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 바쁜 일상과 시간의 흐름에 동생을 잊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여러 고민 결과 내 방식으로 극복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동생의 말과 생각. 동생이 이루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남아있다. 내가 얼마나 이룰지, 어떤 사람이 될지 장담할수는 없지만 내 뒤에는 형호의 생각이 있다는 것을 다른사람도 알수 있게 하고싶다. 동생이 했던 이야기는 #ReHHo에서, 내 이야기는 #eWord 에서 이어질 것이고,  각 글은 기도가 될 것이다.

동생이 암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2011년 1월. 신입사원을 가르칠 일이 있었다. 새로운 방식에 눈을 뜨고 있는 시기였고, 암의 주요원인중 하나가 일로인한 스트레스였기 때문에 동생에게도 가르쳐주고 싶은 이야기들 이었다. 말과 시선은 신입사원을 보고 가르쳐줬지만 나는 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내가 알고 있는 바를 최대한 공유했다. 나에게는 간단한 지식도 타인에게는 도움이 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福을 짓고 싶었다. 베푸는 삶. 그러면 동생의 병이 낫는데 도움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막연한 기대... 말도 안되는 기대지만 그것이었다. 그래서 남겨진것들이 이런 영상강의(G.mail - Good Company Tutorial.), 글(2012 년 글| #eWord), 그리고 여러 링크들(Hyungrok Lee - ehrok | about.me.)이었다. 

+ 덧붙여 알게된 것 : 모든 것을 알려주더라도. 생각보다 사람들이 감정이 열리기 전에는 받아들이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 각자 받아들이더라도 해석하는데에 차이가 있다는 것. 글은 죽어있는것. 계속 발전하는 사람이라면 탈피하는 껍질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글이란 내어보아야 안다는 것. 생각 하는 것보다 내어낸 글은 부족하다는 것등등. 그리고 이 역시 껍질이라는 것.   
2011.7.31 나를 보는 동생 형호

+ 동생은 어린 시절 나를 '형아'라고 불렀다. 이제는 들을수 없는 말. 

그 어떤날. 형호야 형이 어떤걸 명심하고 살았으면 좋겠니.
... 저번에 이야기 했는데... 이해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  '많이 이해하고 살라고?'  아니 이해하는 사람. 이해는 배려에서 시작되는데 그런사람을 주위에 많이 만들어. 그게 행복한 삶이야. 
성공은 명사가 아니야. 보통 무엇이 되고 싶다고 성공을 명사로 이야기하잖아. 그런데 그게 아니야. 무엇이 되어서 어떤걸 하겠다가 되어야 해. 동사가 되어야해. 아.. 이거 내 자식 생기면 가르쳐주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이야기였는데. ㅎㅎ
    원칙을 정하고 바보가 되길 두려워 말아. 원칙이 없으면 흔들려. 여기서 중요한게 바보가 될수 있어야 해. 바보가 되길 인정하지 않으면 원칙이 틀렸을때 틀린걸 몰라. 몰라서 고칠수도 없어. 원칙을 갖고 바보도 되어봐.
    고맙다 형호야. 잊지 않을께. 그리고 보여줄께. 
    이제는 고통스럽고 힘들지않게 편히 누워 잘수 있겠다.
    사랑한다. 내 동생.


    +형호의 편지: 나야 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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